1. 번아웃
일이 잘 안 풀렸다.
3주째 마감에 쫓기고 있었고, 집에 가면 샤워도 안 하고 침대에 쓰러졌다.
섹스는 한 달 넘게 안 했다. 자위도 귀찮았다.
그러다 목요일 밤, 갑자기 그녀 생각이 났다.
2. 연락
카톡을 보냈다.
"요즘 어때?"
5분 후에 답이 왔다.
"잘 지내. 너는?"
"만날 수 있어?"
"언제?"
"지금"
"우리 집 올래?
3. 세 번째 방문
그녀의 집 앞.
"들어와."
거실로 들어갔다. 소파, 작은 테이블, 벽에 걸린 기괴한 그림. 묘한 화분들. 지난번에도 본 풍경.
나는 남의 집에 가는 걸 좋아한다.
그 사람의 책장, 냉장고 자석, 화장실 수건 걸이. 그런 것들을 보는 게 좋다.
그 사람의 모든 것과 섹스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.
4. 맥주와 과자
첫 번째, 두 번째 방문은 달랐다.
첫 번째는 문 열자마자 키스했다.
두 번째도 소파까지 못 갔다.
하지만 세 번째는 천천히 시작됐다.
"뭐 마실래?"
"맥주 있어?"
그녀가 냉장고에서 카스 두 캔을 꺼냈다.
테이블에 먹태깡을 놓았다.
5. 이야기
소파에 나란히 앉았다.
"번아웃 왔다며?"
"응. 마감 3개가 동시에 왔어."
"힘들겠다."
"잠도 잘 못 자고. 머리도 안 돌아가고."
그녀가 맥주를 따서 건넸다.
한 모금 마셨다. 차가웠다.
"너 보고 싶었어."
"나도."
이야기가 이어졌다.
일 얘기, 스트레스 얘기, 요즘 본 영화 얘기.
맥주 캔이 하나 늘었다. 둘이 됐다. 셋이 됐다.
먹태깡이 바닥났다.
6. 키스
그녀가 내 어깨에 기댔다.
고개를 돌렸다. 그녀의 얼굴이 가까웠다.
키스했다.
천천히. 급하지 않게.
그녀의 손이 내 목덜미로 올라왔다.
내 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.
7. 침대로
"침대로 갈까?"
"응."
손을 잡고 침실로 갔다.
침대에 나란히 누웠다.
다시 키스했다. 옷이 하나씩 벗겨졌다.
그녀가 내 위로 올라왔다.
손이 내려갔다.
그런데.
8. 안 섰다
반쯤만 섰다.
그녀의 손이 움직였다. 입으로도 해줬다.
하지만 변하지 않았다. 반쯤. 거기서 멈췄다.
"괜찮아. 피곤했나 봐."
"...미안해."
"미안할 거 없어."
“…”
하지만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.
9. 옷을 입다
그녀가 옷을 주워 입었다.
나도 속옷을 입었다.
10. 집으로
지하철을 탔다.
창밖을 봤다.
'대체 뭐가 문제지?'
11. 아침
눈을 떴다. 아침이었다.
가장 먼저 느낀 건 발기였다.
꼿꼿하게 서 있었다.